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금성(紫禁城)이 바로 이곳이다. 원·명·청으로 이어지는 800여 년간, 동아시아 일대에서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던 천자의 거성(巨城)이며 청대까지 중국 정치의 1번지. 동서 753m, 남북 961m, 총면적 72만㎡. 천안문 광장의 약 1.7배로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이다. 지금의 자금성이 세워진 것은 명대인 1420년,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이 일대에 궁전이 건설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원 세조, 쿠빌라이 칸(忽必烈汗, 1215~1294) 때인 1267년이다. 원의 수도였던 대도(大都)의 황궁터가 현재 자금성과 50% 가량 겹치기 때문이다. 영락제의 명으로 원의 궁전터 약간 남쪽에 새로운 궁전을 건립했다. 그러나 명이 멸망할..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인 건국자이며, 지금은 중국인들로부터 신격화된 마오쩌둥(毛泽东)의 시신을 수습한 곳. 시신 영구 안치법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거의 관례화된 장례법인데, 구소련의 혁명영웅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을 영구 안치한 이후 중국, 베트남, 북한 등지로 퍼져나갔다. 시신이 안치된 사람들 모두 생전에는 이런 방식을 반대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호치민처럼 화장한 후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사람도 있다. 이 기념당은 마오쩌둥 사후 1년 후인 1976년 11월 공사를 시작했다. 총면적 약 57,000㎡, 높이는 약 33.6m, 지상 2층, 지하 1층의 거대한 건물로, 중국 혁명을 묘사한 역동적인 조형물이 건물 전면에 세워져 있다. 종교 성지를 방불케 하는 곳으로 관람 또한 상당히 까다로운 편. 국내외에서..
여태껏 보지 못한 형형색색의 갤러리와 공방이 모여 있는 예술단지. 중국의 소호(Soho)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곳이다. 아트샵이나 예술서점, 카페, 레스토랑도 꽤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798 예술구는 중국인보다는 외국인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베이징 문화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원래 이 일대는 동독의 기술 제휴로 건설되고 인민해방군이 직영하던 라디오, 군수물자 공장이었다. 중국 자체의 기술로 만들어낸 원자탄과 인공위성의 주요 부품들이 이곳에서 연구 생산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처럼 신중국 전자공업의 요람이었던 797, 718, 798, 706, 707 등이 이제는 현대 중국 예술의 대명사가 되었다. 1990년대말 차오양구(朝阳区)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공장들이 이전한 후..
절대권력의 상징인 중국 황제가 살았던 궁전의 정문이 바로 천안문이다. 높이 33.7m의 2층짜리 성문이며, 금색의 유리기와 지붕과 붉은 기둥의 색채가 선명하다. 천안문이 처음 건설된 것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명 영락제 때인 1417년이다. 당시 이름은 승천문(承天门)이었는데, 17세기 명나라가 멸망한 후, 청대에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베이징을 점령한 청 순치제에 의해 1651년 재건되며 천안문(天安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쟁을 종식하고 세상을 평안케 하고 싶다는 바람을 궁전의 정문에 명시한 셈이다. 1949년에 초대주석 마오쩌둥(毛泽东)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황궁의 정문에서 근대 중국의 상징으로 자리바꿈을 한 셈이다. 중국이 대외에 개방되기 전인 19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