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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의 상징인 중국 황제가 살았던 궁전의 정문이 바로 천안문이다. 높이 33.7m의 2층짜리 성문이며, 금색의 유리기와 지붕과 붉은 기둥의 색채가 선명하다.
천안문이 처음 건설된 것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명 영락제 때인 1417년이다. 당시 이름은 승천문(承天门)이었는데, 17세기 명나라가 멸망한 후, 청대에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베이징을 점령한 청 순치제에 의해 1651년 재건되며 천안문(天安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쟁을 종식하고 세상을 평안케 하고 싶다는 바람을 궁전의 정문에 명시한 셈이다.
1949년에 초대주석 마오쩌둥(毛泽东)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황궁의 정문에서 근대 중국의 상징으로 자리바꿈을 한 셈이다. 중국이 대외에 개방되기 전인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서방은 중국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국경절(10월 1일)에는 중국의 주요 인사들이 천안문에 올라 경축 행사를 벌이곤 했는데, 신화통신이 전세계에 타전하는 이 날의 행사 사진만이 유일하게 중국 내부의 권력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나침반이었다고 한다.
천안문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입구가 5개이다. 그리고 각각의 문은 용도가 달랐다. 가운데 가장 큰 문은 황제 전용문이다. 하지만 예외인 때도 있었다. 황제의 부모가 들고 날 때, 황후가 시집올 때, 그리고 과거 급제자 1~3등이 처음 입궐할 때 한 차례에 한해 출입이 가능했다. 문 앞에는 금수교(金水桥)라 불리는 조각으로 장식된 흰 대리석 다리가 다섯 개 있다.
현대 중국에서 천안문이 가지는 확고부동한 심벌은 바로 황제 전용문 위에 그려져 있는 대형 마오쩌둥 초상화다. 제작에만 1년이 걸렸다는 이 그림은 오늘날 중국의 정치적 시계(視界)를 보여주는 경계 중 하나인데, 2007년 5월 화염병 투척 사건이 벌어져 전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초상화 좌우의 거대한 국가 문장은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 라는 뜻의 정치적 표어이다. 천안문이 생긴 이래 약 600년간 금단의 구역이었던 천안문 성루가 일반에 개방된 것은 1988년. 입장료만 내면 누각 위에 올라갈 수 있으며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보며 그 넓이를 조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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