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탄과 비교할 수 있는 프랑스 조계지 고건축의 보고. 영국에 의해 건설돼 주로 기념비적인 관공서와 상업 건축물이 모인 곳이 와이탄이라면, 우캉루는 실제 사람들이 살았던 저택과 공동 아파트들의 보고다. 길게 뻗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사이로 예쁘장하게 지어진 공동 주택과 개인 저택이 여행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두 곳은 심지어 오늘날의 느낌도 다르다. 와이탄이 대부분 상업지구로 개방돼 부유층의 놀이터로 변했다면, 우캉루는 오늘날까지도 상하이 시민을 위한 삶의 터전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여행자에게 우캉루 산책은 그저 웅장한 느낌의 노르망디 아파트를 구경한 후 한적한 가로수길을 걷는 것 말고 더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우캉루 여행정보센터(武康路旅游咨询中心)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1896년 건립된 가톨릭 성당으로,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로 손꼽혔다. 높이 50, 길이 83, 폭 30미터에 달하며 고딕 스타일의 쌍둥이 첨탑이 인상적이다. 중국 공산화 이후의 반종교 정책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미사를 거행하던 곳이었지만, 문화혁명이 개시된 첫 해 홍위병들에 의해 폐쇄되는 비운을 맞았다. 성당으로 난입한 홍위병들은 쉬자후이 천주교당의 첨탑까지 잘라버렸다. 지금의 첨탑은 1982년 중국 정부에 의해 복원된 것. 현재 중국은 기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지만, 로만 가톨릭과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다. 교황의 국가인 바티칸 시국이 중국이 아닌 타이완과 수교를 맺고 있는 탓에, 현재 중국 정부가 로마 교황의 권위는 물론 교황이 임명하는 주교의 존재조차 인정하고..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 1881~1936)의 무덤이 있는 기념공원. 우리에게는 홍커우 공원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일본 왕의 생일을 폭탄으로 축하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근대의 선구자 루쉰을 기리는 의미에서 홍커우 공원을 루쉰 공원으로 개명했다. 당시 중국의 국가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은 확고한 루쉰 찬양자로서 이 일대의 성역화를 명령했다고 한다. 공원 내부에는 루쉰의 일생과 업적을 정리한 기념관과 이역만리 타국에서 조선 민족의 기개(氣槪)를 만방에 과시한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 매정(梅亭)이 있다.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장소에 세워진 작은 기념관이다. 거사 직후 중화민국의 총통이던 장제스는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의 조선인이 해냈다'며 극찬했다. 사실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전까지 중국인들은 조선인을 일본인의 2중대쯤이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폭탄 투척 직후 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게 되었고, 후일 광복군 창설의 매개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공정한 중재자임을 자처하던 유럽과 미국은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한 일본의 편을 들며 임시정부를 몰아세워 결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게 된다. 한때 전 중국과 한반도를 환호하게 했던 사건의 진원지이지만,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안내 표석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
예원을 둘러싸고 있는 상업단지. 언제나 관광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으로 원래는 예원의 일부였다. 중국 강남 지방 특유의 날아갈 듯한 기와 지붕으로 장식된 탓에 민속촌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오밀조밀하게 밀집돼 있는 100여 곳의 점포들은 각각 레스토랑부터 기념품점, 골동품점, 보석상, 디지털 카메라 매장 등으로 어지간한 백화점만큼이나 다양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하겐다즈, 맥도날드, 스타벅스와 같은 서양 프랜차이즈들까지 가세하며 특유의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2008년 완공된 상하이 최고층 빌딩으로 101층, 492m의 높이를 자랑한다. 건물 상단의 빈 공간이 병따개 같다고 해서 한국인 여행자들은 '병따개 건물'이라고도 부른다. 일본계 부동산 회사인 모리 그룹의 소유인데, 그 때문인지 일본계 회사들은 주로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에 중국 지점의 본부를 두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만화 에 등장하는 하츠시바 전산의 중국 지점도 바로 이곳, 상하이 세계금융센터다. 금무대하와 달리 지하 2층부터 3층까지는 식당 밀집가라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은 방문하게 된다. 73~93층은 파크 하얏트 호텔이 들어가 있는데, 현재 상하이 탑 3에 들 정도의 고급스러운 호텔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하이 세계금융센터가 여행자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바로 ..
현지에서도 줄여서 MOCA 라고 부른다. 2005년 9월 상하이 출신이자, 중화권 제일의 비취 판매업 재벌인 공밍광(龚明光 , Samuel Kung)이 사재 2천만元을 털어 만든 사설 미술관이다. 공밍광은 2005년 이래 현재까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를 역임하고 있는데, 사업과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 굵직굵직한 기획전을 성사시켜왔다. 덕분에 상하이에 왔다면 한 번은 꼭 방문해봐야 할 최고의 현대 미술관이 됐다. 현대 미술이 무조건 어렵기만 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다. 참고로 MOCA 는 상하이 최초의 현대 미술관이자 일찌감치 비영리를 선언한 보기 드문 미술관이기도. 유리로 된 박물관 외관도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미술관을 놀리는 한이 있어도 자질구레한 전시는 하지 않..
'동방의 빛나는 진주 구슬'이라는 거창한 뜻을 가진 동방명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국, 그리고 상하이 경제력의 상징과도 같다. 2007년까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탑,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명성을 떨쳤는데, 현재까지도 탑 가운데는 세계 5위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1992년 푸동 개발이 발표되고 3년만에 완공된 동방명주는 순수한 중국 자본과 기술로 지어져, 1990년대 중국 건축기술의 금자탑으로 손꼽힌다. 동방명주가 완성된 1995년 당시 중국의 국가 주석이던 장쩌민(江澤民)을 비롯한 3부 요인들이 총출동한 사실이나 상하이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필수 코스로 들르는 것을 봐도, 동방명주는 하나의 건물이라기보다 중국인들의 자존심 그 자체다. 위치 또한 절묘하다. 서양인들의 손에 의..
상하이 푸동 지구에 조성 중인 마천루 프로젝트의 끝판왕. 높이 632m로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 이로써 492m의 상하이 세계국제금융센터 SWFC는 한참 뒤처지는 상하이 2위로 밀려나게 됐다. 상하이의 마천루들은 모두 장난기 섞인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동방명주는 거꾸로 세워놓은 주사기, SWFC는 병따개인데, 상하이 타워는 꽈배기와 추러스라는 별명이 현재 경합 중이다. 옆에 있는 금무대하와 SWFC가 외국자본의 설계, 기술에 의지한 반면, 상하이 타워는 중국 자본으로 건설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는 나름 커다란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지상에서 꼭대기까지 360도 가까이 비틀어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설계자의 말에 의하면 승천하는 용을 형상화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