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海

魯迅记念馆

cjuice_wakeup 2025. 4. 10. 20:39

 1881년 사오싱(绍兴)의 한 선비 가문에서 태어난 루쉰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仁). 부잣집 도련님으로 곱게 자란 그는 13세에 가문의 몰락을 겪는다. 조부의 투옥과 부친의 죽음은 어린 루쉰으로 하여금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중국의 암울한 현실에 눈을 뜨게 했다. 처음 그가 생각해 낸,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은 의사. 아파도 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포들을 위해 의술을 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중국인들에 관한 필름을 보면서 남의 일인 양 시시덕거리는 동료들을 보고 그는 좌절한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돼지의 삶 대신 인간의 모습을 찾게 하는 것임을 깨달은 그는 메스를 집어던지고 펜을 들었다. 바로 문학을 통해 세상과 인간의 변혁을 꿈꾼 것이다.

 

 근대화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으로 갈팡질팡하던 중국인들에게 루쉰은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라지만, 루쉰은 시대를 초월한 실천적인 문인이었다. 일본에 맞서기 위해 민족의 대단결을 주장하며 대표적인 반일운동인 5·4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젊은이들을 계도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2층으로 이루어진 기념관에서는 루쉰의 전 생애를 서술하고 있다. 그가 쓴 책들의 내용을 다양하게 표현해 놓은 전시물들은 관람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출구 쪽에는 전 세계 96개 언어로 번역된 루쉰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물론 북한의 출판물까지 엿볼 수 있다. 기념관에서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루쉰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원래 루쉰의 무덤은 상하이 교외에 있는 만국공동묘지(万国公墓)에 있었는데, 루쉰 공원 성역화 사업이 이뤄지며 1956년에 이장된 것이라고 한다. 묘 앞에 있는 루쉰 동상은 1961년 루쉰 탄생 6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작품이다. 편안하게 세상을 응시하는 루쉰의 시선이 인상적인데, 비석에 새겨진 '루쉰선생묘(魯迅先生之墓)'라는 비문은 마오쩌둥의 작품이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사실 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 단편 '고향(故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