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

Musei Vaticani

cjuice_wakeup 2020. 5. 1. 18:00

 설령 '내가 세계 최고 박물관'이라고 잘난 체해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곳이 있다면 바로 바티칸 박물관이다. 베일에 싸여 있던 역대 로마 교황의 바티칸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18세기 후반 일반에 공개한 후 지금까지도 연일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런던의 영국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힌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바티칸을 세계적인 권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화가·조각가 등 수많은 예술가를 로마로 불러들였고 그 중에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당대 최고의 내로라하는 작가가 상당수 있었다. 그들에게 궁전의 건축과 장식을 맡겨 오늘날 바티칸 박물관의 기초를 다졌으니 비록 인간적으로는 포악하다는 평을 받는 교황일지라도 그의 높은 예술적 안목과 열성에 우리는 감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 후 600년에 걸쳐 세기의 걸작들을 수집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 자리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의 예술품에서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항상 많은 사람으로 붐비기 때문에 무조건 빨리 가서 줄을 서는 것이 상책이다. 또한 추가 예약금 €4를 지불하고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하면 줄을 서지 않고 곧바로 입장할 수 있다. 입장은 새로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관람을 마친 다음 주세페 모모가 설계한 인상적인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계단을 빙빙 돌아서 나가거나 산 피에트로 성당으로 가는 지름길로 가면 된다.


 박물관의 규모나 전시품에 비해 개관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대기 시간도 길어 관람 전에 무엇을 볼 것인지 숙지하고 가는 것이 좋다. 박물관은 여러 개의 관람 코스로 나누어져 있으니 할애할 수 있는 시간에 따라 선택하여 둘러보자. 내부에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박물관 출구 쪽에 신용도가 높은 바티칸 우체국이 있으니 우편물이 있다면 미리 챙겨가자. 바티칸 시국이 발행한 기념우표를 붙여 우편물을 발송할 수 있어 특별하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입구가 있다. 회화관은 오른쪽 입구로 들어간다. 이곳은 비오 6세 비잔틴 시대부터 현대까지 수집된 미술품을 전시하기 위해 1931년에 건축한 미술관이다. 16개의 전시실에 중세부터 19세기 사이의 회화들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어 종교미술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납작하고 답답해 보이는 중세시대의 패널화부터 화사한 색감의 프레스코화를 거쳐 뚜렷한 입체가 드러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와 극적인 표현이 극대화된 바로크 시대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조토의 제단화와 필리포 리피의 작품,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Trasfiguarazione)>, <성모 대관(Incoronazione della Vergine)>, <폴리뇨의 성모(La Madonna di Foligno)>,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완성 작품 <성 지롤라모(San Girolamo)>, 카라바조의 <십자가에서 내리심(Deposizione nel Sepolcro)> 등이 있다. 보통 그냥 건너뛰는 경우가 많지만 훌륭한 작품들이 많으니 여유가 된다면 둘러보자.


 라파엘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그의 사후에 발견되어 장례식장을 장식했다. 다른 화가의 작품이나 모방하며 자신의 화풍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비난 받았던 라파엘로 자신의 신앙 고백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마태오 복음서 17장의 내용을 그렸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함께 수난 직전 게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다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만나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고난 뒤의 영광을 미리 예고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위치한 평온한 분위기의 상단과 혼란스러운 분위기의 하단이 대비되어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함과 존엄함이 더욱 극대화됐다. 상단과 하단의 명암 차이와 사용된 색채, 그리고 인물들의 역동적인 자세 등으로 인해 바로크의 씨앗이 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그림 양 옆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도 라파엘로의 것인데, 오른쪽이 <성모 대관>(1502~1503), 왼쪽이 <폴리뇨의 성모>(1511~1512)다. 각 그림에서 점점 독창성을 찾아가는 라파엘로의 화풍 변화를 느껴볼 수 있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극적인 표현을 추구했던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거두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만들어내는 대각선 구도와 개성 있는 포즈, 섬세한 근육과 피부 주름의 표현 등이 매우 사실적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상체를 안고 있는 요셉, 다리를 들고 있는 니고데모의 모습이 힘겨워 보이고 인간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성인을 성스럽게 묘사하지 않고 주변 인물과 별 차이 없이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갖고 있는 자신감과 신념이 그대로 보이는 작품 중 하나.


 박물관 입구에서 왼쪽 문을 통과하면 브라만테가 설계한 넓은 정원과 만나게 된다. 중앙 벽감 내에 있는 4미터 높이의 솔방울 조각에 연유하여 '솔방울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솔방울은 공기를 정화하는 작용을 하는데 예전에 교황청을 방문하는 이들이 이 솔방울 앞에서 자신의 죄를 씻어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많은 단체 여행자들이 패널 앞에 모여 설명을 듣는 장소로서 로마 시대 분수의 일부였던 솔방울은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배경으로도 인기 만점. 정원에는 다른 전시실로 연결된 입구가 보이는데 오른쪽에는 많은 조각상들이 진열된 복도, 왼쪽에는 벨베데레의 뜰로 연결된 계단이 있다. 진열된 조각상에는 흥미로운 것이 꽤 있지만, 시간이 없다면 곧바로 벨베데레의 뜰로 올라가자. 정원 한복판에 있는 지구 모형은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중 유일한 현대 조형물로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1990년작 <천체 안의 천체(Sfera con Sfera)>다.


 15세기에 건축가 브라만테(Bramante)가 교황 인토켄티우스 8세를 위해 지은 별장의 중심부로, 정원의 모양이 팔각형이어서 '팔각형의 안뜰'이라고도 부른다. 작은 면적이긴 하나 이 안에는 바티칸 박물관의 조각품 중 가장 중요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훌륭한 조각상들이 진열돼 있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잘 생긴 페르세우스(Perseus)와 신들의 전령사인 헤르메스(Hermes) 조각도 있으니 꼼꼼하게 둘러보자. 벨베데레는 전망대라는 뜻. 이곳에 소장된 작품들만큼이나 이곳 창에서 바라보는 로마 시내 또한 멋지다. 


 트로이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걸작. 1506년 에스퀼리노 언덕에 있는 네로의 황금집(Domus Aurea)에서 발굴되었다. 트로이 전쟁 당시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트로이의 목마를 들이지 말라고 경고한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Laocone)이 아테나 여신에게 벌을 받는 처절한 모습을 조각한 작품이다. 신이 보낸 커다란 두 마리의 뱀과 사투를 벌이며 죽어가는 라오콘과 두 아들을 실감 나게 묘사해 놓았다. 고통스러워하는 라오콘의 얼굴 표정과 뱀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근육의 묘사가 매우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라오콘 상 옆의 사진은 발견 당시 팔이 없는 라오콘을 상상에 의거해 팔을 붙였던 모습이다. 처음 복원될 당시에는 정확한 팔의 형태를 알 수 없어 지금과 달리 쭉 펴진 상태로 하였지만, 후에 굽어진 라오콘의 팔이 발견되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왼쪽의 <아폴로(Apollo)> 상은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그리스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복사한 작품이다. 모작품이라 하더라도 고대 최고의 조각 중 하나라고 꼽히고 있다. 인체의 완벽한 비율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팔이 잘려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왼손에는 활을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등에 메고 있는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안토니오 카노바가 만들었으며 신고전주의 시대 작품의 진수 중 하나라고 칭해지는 작품. 늘어지는 옷자락과 메두사 머리카락의 묘사가 섬세하다.


 뮤즈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학예, 음악, 무용, 시(詩)가 등을 주관하는 신들을 말한다. 이 방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홉 명의 뮤즈 여신상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뮤즈의 보살핌을 받은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인 소포크레스, 소크라테스, 호메로스, 플라톤 등을 조각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 원래 티볼리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별장에서 발굴된 것을 복사해 놓은 것이다.


 로마 황제의 두상과 그리스·로마의 신상을 모아 놓은 원형 전시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부리아시스가 조각한 제우스의 두상. 방 한가운데에는 네로 황제의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에서 출토된 지름 13m의 대리석 욕조가 놓여 있다. 욕조가 놓인 바닥은 오트리콜리 욕장 유적에서 통째로 가져온 것이다. 실내에는 판테온과 유사한 형태의 고대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섬세한 바닥 모자이크는 고대 로마인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짐작하게 한다.


 네 부분의 길이가 같은 그리스 십자가형 전시관에는 4세기에 만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엘레나 성녀와 대제의 딸 콘스탄티나의 석관이 있다. 전투 장면이 새겨진 것이 엘레나, 포도 수확 장면이 새겨진 것이 콘스탄티나의 석관이다.


 그리스 십자가형 전시관과 연결된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라파엘로의 방과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는 복도가 보인다. 복도를 따라 앞으로 가면 양쪽 벽에 대형 카펫이 걸린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아라치의 회랑이다.


 회랑 왼쪽에는 16세기 라파엘로의 제자들이 그린 예수의 일생을, 오른쪽에는 산 피에트로 성당을 건축한 우르바누스 8세의 일화를 수놓은 태피티스트리(카펫)가 걸려 있다. 이렇게 조명이 어두운 것은 태피티스트리의 변색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둑한 아라치의 회랑을 벗어나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금빛 천장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회랑에 들어서면서부터 천장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여행자로 늘 정체 현상이 나타난다. 사실 이 회랑의 주인공들은 천장이 아니라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는 지도들이다. 아라치의 회랑과 연결된 120미터의 지도 회랑은 16세기 말에 무치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3년에 걸쳐 이탈리아 전역을 그린 지도를 진열해 놓았다. 매우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지도로 지금의 지도들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1480~1585년 사이에 이탈리아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도시와 주요 성당을 갖고 있는 도시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이곳의 지도들을 살펴보노라면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매우 유사한 지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03년에 교황이 된 율리우스 2세(Giulio Ⅱ)는 자신의 새로운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니콜라 5세(Nicola Ⅴ)가 쓰던 아파트를 새로이 단장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교황은 브라만테를 초청했지만, 정작 브라만테는 자신이 아끼던 25세의 젊은 예술가인 라파엘로를 추천했다. 교황은 먼저 라파엘로에게 서명의 방을 장식하고 엘리오도로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 콘스탄티누스의 방을 차례로 꾸미도록 했다.


 외국 군대를 물리친 율리우스 2세의 행적을 찬양하는 내용들로 꾸며진 방. 라파엘로(Raffaello)와 페루치(Peruzzi)의 벽화로 장식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인 <성 베드로의 해방(Liberazione di San Pietro)>은 베드로가 투옥됐을 때 천사가 나타나 간수를 잠재우고 사슬을 풀어 밖으로 인도했다는 사도행전의 구절을 묘사하고 있다. 빛에 의한 명암 처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그림 속 베드로의 얼굴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얼굴인 걸 보면 당시 교황의 권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반대편 창문에 그려진 <볼세나의 기적(Miracolo di Bolsena)>도 라파엘로의 작품인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있던 한 신부가 1263년 미사 도중 성찬식의 빵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기적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교회 재판소나 교황이 서류를 결재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던 서명의 방에는 라파엘로의 걸작 <성찬과 세례에 대한 토론(Disputa del Sacramento)>, <아테네 학당(Scuola d'Atene)>이 있다. 라파엘로의 방 4개 중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 모여 있어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정확한 구도와 세심한 인물 배치는 그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Perugino)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1508~1511년에 완성된 방으로 4개의 테마를 나타내고 있다. <성찬과 세례에 대한 토론>은 이론에 대한 우의를, <아테네 학당>은 철학에 대해서, <파르나스 신의 정경>은 시에 대해서, 나머지 한 장면은 정의에 대한 우의를 표현한다.


 가장 잘 알려진 <아테네 학당>은 원근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실리카를 배경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모습이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해서 그려져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운데 두 사람 중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모델로 한 플라톤이며 이상주의를 대표한다. 그 옆에서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있는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로 합리론을 대표한다. 당시 양립하고 있었던 두 철학의 동향을 나타내고 있다. 맨 앞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델은 그의 라이벌인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그보다 1년 먼저 이곳으로 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 외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저마다의 표지로 그려져 있다. 많은 인물을 그려 넣었지만 번잡해 보이지 않는 화면 구성과 색채감이 이 그림의 특징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가진 라파엘로와 그의 애인이 관객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사랑을 응원해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