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o Romano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제국의 사법·정치·종교·경제 중심지다. 이곳은 시민 대화의 장이며 번화한 상가 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화려한 과거를 짐작하게 하는 기둥이나 초석만 놓여 있어 황량해 보이기까지 하다.
한여름에는 그늘도 없고 식수대도 없어 약간 고생스러울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떠올리며 당시 모습을 상상해 보면 흥미로운 관람이 될 수 있다. 미국 드라마 <ROME>을 미리 봐둔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콜로세움과 마주 보고 있는 입구로 들어왔다면 지도를 참고해서 순서대로 둘러보자.
서기 81년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가 유대 전투에서 그의 형 티투스와 아버지가 거둔 승리를 기념해 세웠다. 현존하고 있는 로마의 개선문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많이 부식됐지만, 예루살렘의 신전에서 로마군이 약탈품을 운반하는 모습을 새긴 양각은 잘 보인다. 전투 상황을 표현한 아치 내부의 부조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시조(始祖)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로 의인화된 도시 로마, 그리고 비너스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135년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의 설계에 따라 만들었다. 유명한 건축가 아폴로도루스가 신전의 비너스 상이 너무 크다고 하자, 하드리아누스가 가차 없이 그를 처형했다.
포로 로마노의 공공건물이 얼마나 웅장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거대한 아치와 천장이 인상적이다. 과거 재판소와 사업장으로 사용되었던 세 개의 볼트형 천장은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가로 100미터, 세로 65미터, 높이 35미터다.
베스타의 신성한 불꽃을 지키던 사제 베스탈(Vestal)들이 살던 기숙사로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원래 50개의 방을 가진 3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중앙 정원을 둘러싼 거대한 사각형의 건물이다. 여성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거주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도 연못, 주변의 조각상들, 부엌이나 응접실, 식당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팔라티노 언덕 쪽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4세기 무렵 세워진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신전. 지금의 모습은 1930년대에 부분적으로 재건된 것이다. 원래 20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지금은 반도 남아 있지 않다. 불의 여신 베스타를 모시던 곳으로 베스탈이라고 불리는 6명의 사제가 베스타의 신성한 불꽃을 하루 종일 지켰는데, 밤에 그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6~10세의 귀족 가문 딸들 가운데 선정된 베스탈은 30년 동안 일했으며 이 기간 동안은 반드시 처녀성을 간직해야 했다고 한다. 베스탈들은 어떤 죄를 지어도 사람의 손으로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잘못은 용서받지 못했는데, 불씨를 꺼뜨리거나 처녀성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베스탈들은 즉시 생매장당했다고 한다.
건축을 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법정. 민사소송을 담당하던 180여 명의 변호사들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자신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반대편에게 야유를 퍼붓는 일을 시켰다고 한다. 그때 그 일을 도맡았던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주사위 놀이를 하며 기록한 점수가 계단에 일부 새겨져 있다.
공화제 시대의 최고 정치기관인 원로원은 고대 로마의 입법·자문 기관 역할을 담당하며 집정관(행정·군사를 통솔하는 최고 관직)을 선출하던 곳이었다. 중세시대에 성 아드리아노 성당으로 쓰였기에 보존 상태가 포로 로마노의 건물들 중 가장 좋다. 지금의 4층짜리 벽돌 건물은 1930년대에 무솔리니가 복원한 것이라 매우 소박해 보인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야심만만했던 그는 삼두 정치의 파트너인 폼페이우스를 제거하고 절대 권력을 지닌 황제를 꿈꾸었지만, 아들처럼 아끼던 브루투스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가 남긴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카이사르가 전쟁에 승리하고 남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말과 루비콘 강을 건널 때 모든 군대가 무장을 해제해야 하는 규율을 어기며 말했던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를 떠올리며 원로원을 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카이사르의 이름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저·카이저·짜르 등의 발음으로 황제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것으로 203년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두 아들인 카라칼라(Caracalla)·제타(Geta)에게 헌정된 개선문이다. 세베루스의 즉위 10주년과 동방원정 승리를 기념해 세워진 높이 23미터, 폭 25미터의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치.
3개의 아치 문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형태였고 꼭대기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제타를 기념하는 조각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 권력다툼에서 승리한 카라칼라가 동생을 죽이고 그의 이름을 조각에서 지워버린 비극의 흔적이 남아 있다.